100번이나 불합격 통지를 받은 당신에게
realist 님의 글을 보고 동생 생각이 들어서 작성합니다. realist 님께는 깊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힘내시라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내 동생은 백수다. 83년생이고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다음부터는 쭈욱 내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동생은 소방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동생은 중고교생때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끝에서 3, 4등을 다투는 학생이었다. 게임이 아니면 전혀 잘 하는 것이 없는 동생보다도 공부를 더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런 동생이 그냥 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간 소방학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할 리 없었고, 열심히 공부하면 어엿한 소방관이 될 수 있겠다는 주변의 희망어린 충고를 무시한 채 여전히 게임에 매진하고 있었다.
동생은 졸업하고 나서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또 당연하게도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방송국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와 함께 처음 시작한 것이 연극 동호회였다. 몇 달간의 맹연습 끝에 동생은 20분짜리 연극을 무사히 마쳤고 암울한 미래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연기를 하고 싶단다. 하루하루 나이만 채워가던 20대 중반의 나이에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생긴 것이다.
연극이 끝난 후 연극 동호회는 해체되고 나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하고 마땅한 거처가 없는 동생은 나를 따라 왔다. 그리고 동생은 액션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고, 액션 스쿨에 지원하기로 했다. 목표를 잡은 뒤에는 검도장에 등록을 하고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동생의 목표는 스무살 중반에 마련한 급조된 것에 불과했고 "이제 시작해서 뭐가 되긴 되겠냐?"며 약간은 상처가 될 법한 말들도 가끔씩 하기도 했다만 그래도 억지로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데 뭐 어떠랴 싶기도 하고, 제 풀에 지치면 뭐 나중에는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서 농사라도 짓겠지 싶기도 하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라지만 내 동생을 보면 정말 사회에 면목이 없다. 동생에게 마땅이 직업이 없는 것은 사회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병폐 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 탓인 까닭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고 배웠는데, 과연 내 동생은 세상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해 내면서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동생을 보면 정말 앞이 캄캄하다. 에고. 이야기가 잠깐 새었다.
아무튼 동생은 며칠 전 검도를 배우기 시작한지 6개월 만에 1년에 한 번 있다는 액션 스쿨에 입소 면접을 보러 갔다가 낙방하고야 말았다. 낙방 소식을 받은 다음날도 찾아가서 참관이라도 가능하지 않은지 부탁해 보았지만 그마저 거절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액션 스쿨에 등록하기 위해서 수 개월 전부터 신체 사진을 찍고 이력서를 찍어서 접수하고 이것 저것 준비하던 동생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취직을 준비하면서 몇 차례 거절을 경험했기에 그 기분이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액션 스쿨이라는 곳은 대충 들은 이야기로는 무술을 훈련한다는 국내에 흔치 않는 그런 곳인데, 무슨 영화인 협회 같은 곳에서 재원을 지원 받기 때문에 훈련생들한테 따로 교육비를 받지는 않고 그렇다고 훈련생들한테 돈을 주지도 않는 그런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훈련생들은 각자 알아서 돈을 벌어서 생활하고 훈련은 따로 받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하는 듯. 동생 말로는 올해 지원한 사람이 4~50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하던데, 30명을 뽑는 입소 시험에서 동생은 여기에서마저도 꼴찌에서 3~4등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내가 보기에 낙방은 지원하기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동생은 하루 두 시간 정도 검도장에서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밤새 게임을 하고 낮에는 낮잠을 자는 생활을 인천으로 이사온 이후 열 달 동안 반복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생에게는 오늘이 자신의 스물 여섯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운 날이 될 것이다.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지.
그래서 오늘은 잔소리를 참아야겠다. 그동안 자신의 노력이 나의 눈에 얼마나 하찮게 보였는지 말해 주는 대신 피자를 한 판 시켜 주어야겠다. 동생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거절당한 오늘을 함께 기억해 주어야겠다. 오늘은 참담하겠지만, 내일은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목표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시골 내려가서 농사를 지을 때 짓더라도 말이다.
realist 님의 글을 보고 동생 생각이 들어서 작성합니다. realist 님께는 깊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힘내시라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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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은 백수다. 83년생이고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다음부터는 쭈욱 내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동생은 소방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동생은 중고교생때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끝에서 3, 4등을 다투는 학생이었다. 게임이 아니면 전혀 잘 하는 것이 없는 동생보다도 공부를 더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런 동생이 그냥 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간 소방학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할 리 없었고, 열심히 공부하면 어엿한 소방관이 될 수 있겠다는 주변의 희망어린 충고를 무시한 채 여전히 게임에 매진하고 있었다.
동생은 졸업하고 나서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또 당연하게도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방송국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와 함께 처음 시작한 것이 연극 동호회였다. 몇 달간의 맹연습 끝에 동생은 20분짜리 연극을 무사히 마쳤고 암울한 미래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연기를 하고 싶단다. 하루하루 나이만 채워가던 20대 중반의 나이에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생긴 것이다.
연극이 끝난 후 연극 동호회는 해체되고 나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하고 마땅한 거처가 없는 동생은 나를 따라 왔다. 그리고 동생은 액션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고, 액션 스쿨에 지원하기로 했다. 목표를 잡은 뒤에는 검도장에 등록을 하고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동생의 목표는 스무살 중반에 마련한 급조된 것에 불과했고 "이제 시작해서 뭐가 되긴 되겠냐?"며 약간은 상처가 될 법한 말들도 가끔씩 하기도 했다만 그래도 억지로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데 뭐 어떠랴 싶기도 하고, 제 풀에 지치면 뭐 나중에는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서 농사라도 짓겠지 싶기도 하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라지만 내 동생을 보면 정말 사회에 면목이 없다. 동생에게 마땅이 직업이 없는 것은 사회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병폐 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 탓인 까닭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고 배웠는데, 과연 내 동생은 세상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해 내면서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동생을 보면 정말 앞이 캄캄하다. 에고. 이야기가 잠깐 새었다.
아무튼 동생은 며칠 전 검도를 배우기 시작한지 6개월 만에 1년에 한 번 있다는 액션 스쿨에 입소 면접을 보러 갔다가 낙방하고야 말았다. 낙방 소식을 받은 다음날도 찾아가서 참관이라도 가능하지 않은지 부탁해 보았지만 그마저 거절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액션 스쿨에 등록하기 위해서 수 개월 전부터 신체 사진을 찍고 이력서를 찍어서 접수하고 이것 저것 준비하던 동생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취직을 준비하면서 몇 차례 거절을 경험했기에 그 기분이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액션 스쿨이라는 곳은 대충 들은 이야기로는 무술을 훈련한다는 국내에 흔치 않는 그런 곳인데, 무슨 영화인 협회 같은 곳에서 재원을 지원 받기 때문에 훈련생들한테 따로 교육비를 받지는 않고 그렇다고 훈련생들한테 돈을 주지도 않는 그런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훈련생들은 각자 알아서 돈을 벌어서 생활하고 훈련은 따로 받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하는 듯. 동생 말로는 올해 지원한 사람이 4~50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하던데, 30명을 뽑는 입소 시험에서 동생은 여기에서마저도 꼴찌에서 3~4등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내가 보기에 낙방은 지원하기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동생은 하루 두 시간 정도 검도장에서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밤새 게임을 하고 낮에는 낮잠을 자는 생활을 인천으로 이사온 이후 열 달 동안 반복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생에게는 오늘이 자신의 스물 여섯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운 날이 될 것이다.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지.
그래서 오늘은 잔소리를 참아야겠다. 그동안 자신의 노력이 나의 눈에 얼마나 하찮게 보였는지 말해 주는 대신 피자를 한 판 시켜 주어야겠다. 동생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거절당한 오늘을 함께 기억해 주어야겠다. 오늘은 참담하겠지만, 내일은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목표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시골 내려가서 농사를 지을 때 짓더라도 말이다.

덧글
저도 사회에서 앞으로 수십번의 거절을 경험할 졸업반이기에, 글이 와닿네요.
동생분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제길 ㅠㅠ